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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10 문자와 목소리 8

문자와 목소리

Posted 2007. 10. 10. 04:30

 며칠전에 과외 도중 아빠한테서 전화가 세네차례 온 적이 있다. 나는 과외 중이라 계속 종료 버튼을 눌러서 전화를 끊었으나 아빠는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오셨다. 마침 과외가 거의 끝날 무렵이라 아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싶어 과외를 마치자마자 급히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빠는 별 일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내가 자다가 안 받나 싶어서 계속 전화를 했다고 하셨다.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서 화가 묻어나왔다. 하지만 이 것도 아빠의 관심이라고 생각돼서 얼른 감정을 죽이고 아빠와 통화했다.

 생각해보면 점차 예전보다 전화를 하는 횟수보다는 문자를 보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핸드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에는 문자보다는 직접 전화를 하는 일이 많았고 어른들은 거의 대부분 문자사용방법조차 잘 알지 못 하였다. 하지만 요즘은 어른들조차도 문자에 이모티콘을 사용할 정도로 문자사용이 활발해졌다. 또한 중고등학생들이 한 달에 보내는 문자가 평균 2~3천여건이나 된다고 한다. 문자가 전화통화보다 손쉽고 간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문자사용이 증가하는 데에는 나의 시간이 방해받기 싫으니 나도 남의 시간을 함부로 방해하지 말자는 생각이 깔려있다.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어가면서 프라이버시를 서로 존중하자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나도 원래 내 시간을 방해받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남에게 괜히 전화했다가 중요한 일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싶어 문자를 주로 하곤 한다. 하지만 가끔은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하는 일이 있다. 하지만 자주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사이가 아니고서는 왠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들고 괜히 전화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상대방의 목소리가 떨떠름할 때에는 상대방이 나를 그다지 반기는 것 같지 않아 서운한 생각마저 든다.

 며칠전에 디지털 무언족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생활이 디지털화되어 가면서 필요할 때 얘기하는 것 이외에는 말 할 필요성이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와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메신저나 핸드폰 문자를 이용하면 되고, 지하철을 이동하면서는 혼자서 휴대기기를 이용해 동영상을 보며, 집에서는 인터넷 게임을 하다보니 말하는 데에 입을 사용할 일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기사에 심히 공감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러다가는 꼬리뼈처럼 성대도 퇴화의 흔적으로 인체에 남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입에 음식물 섭취의 기능이 사라진다면 입마저 퇴화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 것 역시 말도 안 되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혼자 커서 그런지 혼자서 말하는 버릇이 있다.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내가 생각한 걸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고 또 혼자 웃는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나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다들 날 이상하게 여겼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다지 정상적인 버릇은 아닌 것 같다. 아마 이런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서 본다면 나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라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안 그러면 아마 몇 날 며칠을 혼자서 방 안에서 있으면서 사람 목소리라고는 오로지 티비에서 떠들어대는 것만 들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문자가 생활이 되어버린 현대사회, 목소리를 상실해버린 사람들. 나는 가끔은 그립다. 말로 이야기하는 것만이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때가. 편지를 써놓고 답장을 기다리면서 설레이던 때가.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기에 이미 나는 문자와 전화와 인터넷의 편의 속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버렸다.


덧. 혼자서 말하는 버릇을 써놓고 보니 정말 좀 아니네. -_-. 요즘은 많이 안 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ㅎㅎ 난 절대 미친 사람이 아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