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과외 끝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지갑을 꺼내려고 하는 찰나. 갑자기 전화가 왔다. 술 마시고 전화한 고방. 고방과의 전화통화가 끝나고 문자를 보내려고 하는데. 버스가 오는게 아닌다. 덥석 타버렸다. 타고서. 지갑을 찾는데.... .... .... ....

어 지갑이 없네????

에이 설마 가방 어디에 있겠지. 난 지금까지 왠만해서는 지갑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 아마 가방 깊숙히 어딘가 있을거야. 버스 앞 쪽에 쭈그리고 앉아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다 뒤졌다.
지갑이 없다.....
ㄴㅇ러ㅣ아넣ㅁㄴ에ㅐ햐네해ㅑㅁㄷㄱ제허다ㅓ하ㅣㅓ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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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아저씨 차 세워주세요. 죄송해요. 지갑을 잃어버려서요. 그냥 내릴게요. ㅠ.ㅠ."

아저씨는 괜찮다고 그냥 타고 가라고 했는데. 그렇게 갔다가는 지갑을 어떻게 다시 찾냐고..ㅠ.ㅠ 그냥 내리고 보니. 벌써 두 정거장이나 지나온 뒤더라. 우선 내가 가르치는 재홍이한테 전화를 했다.

"재홍아 나 남준인데. 내가 지갑을 잃어버린 거 같거든... 혹시 방에 지갑있나 봐줄래? 어 없어? 그러면 정말 미안한데. 버스정류장에 나가서 혹시 떨어뜨리지 않았나 봐줄래?"

이 거 정말 민폐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선생님 없는데요? "
"정말 없어?"
"지금 찾아보고 있어요."

그렇게 한참이 지나가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건 아니다 싶었다.

"재홍아. 그냥 찾지말고 집에 들어가있어. 미안하다. ㅠ.ㅠ."
"참. 혹시 집에 아버지 계셔?"
"네 계신데요."
"아. 아니다. 아니야 그냥 찾다가 없으면 들어가 미안해 ㅠ.ㅠ."

순간 재홍이 아버지께 잠시 나와주시면 안 되시냐고 여쭈어 보려다가 그만뒀다. 이 게 무슨 민폐냔 말이다. 그리고 나서부터 지갑 vs 나 의 싸움이 시작됐다. 우선은 버스정류장이던지 재홍이네 집으로 가는게 옳았다. 분명 내가 과외를 하러 오면서 버스에 교통카드를 찍고 내린 기억이 확실히 났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이 놈의 지갑이 어디 갔단 말인가. 거기에 카드 다 들어있는데. 그 카드는 어느새 다 발급 받으며 언제 다 정지시킨단 말인가. 미치겠네. 진짜 별의별 생각이 더 들었다. 그냥 슝하고 날아가면 좋겠건만. 경기도에서 두 정거장은 마치 야간행군 한바퀴 도는 코스마냥 길고 길었다. 뛰고 또 뛰고 빨리 걷고 아무리 가도 내가 있던 버스 정류장은 안 나오고. 마음은 심난하고. 가다가 낙엽이 많은 도랑이 있길래 그냥 길인줄 알고 발 디뎠다가. 빠져서 뒤에 가던 사람들이 엄청 비웃었는데 그걸 들을 새도 없었다. 그냥 머리 속에는 지갑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아 내가 과외 가기 전에 성당에 잠깐 갔었지'

맞다. 내가 과외 가기 전에 너무 일찍 와서 성당에 잠깐 앉아 있었다. 거기서 잃어버렸다면 분명 그 쪽 사무실에 지갑이 있을거야. 무조건 성당으로 가는거다. 오로지 성당만 생각하면서 걷고 또 걸었다. 나중에 재보니 한 25분 정도 뛰다가 걷다가 했는데. 그 때는 정말 1시간은 걸리는 거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성당에 도착했다. 정말 하느님께 이렇게 절실히 기도한 적이 있을까. 예전에 성당에 다닐때도 이렇게 절실히 기도한 적은 없다.

'하느님 제가 정말 간사하단 건 알지만 제 지갑이 성당에 있게 해주세요. 정말 간절 기도드립니다. ㅠ.ㅠ.'

그렇게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성당 사무실에 갔다.
거기에는 ..
.....
...
..
.

지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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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Beethoven의 합창 교향곡.


카운터 위에 놓여있는 지갑. 정말 이렇게 감동적인 순간이 있을까. 정말 사무실에 일하는 아저씨가 천사처럼 환하게 보였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도대체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지갑을 찾았다는 생각에. 입에서는 감사합니다를 무의식적으로 계속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재홍이한테 미안하다고 지갑 찾았다고 전화를 하고 집에 오는 버스에 탔다.

맥이 탁 풀리는게 정말 오늘 하루의 모든 기를 다 소진해버린 거 같았다. 아 그래도 다행이다. 찾았으니까. 정말 못 찾았으면 쥐쥐치는 건데. 정말 성당에서 내 지갑 주워서 사무실에 맡겨주신 분들 킹왕짱. 나중에 복 받을 거다. 아니 로또 긁으면 로또 당첨될거다. 역시 성당 사람들은 정말 착한 사람이 많아. ㅠ.ㅠ. 하느님 감사합니다. 왠지 갑자기 성당을 다시 다녀야될 거 같은 이 느낌이 뭔진 모르겠지만 오늘은 우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