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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26 편의점 천국 편의점 지옥 1

편의점 천국 편의점 지옥

Posted 2007. 12. 26. 16:54

 어렸을 때 집 근처에 로손이라는 편의점이 생긴 적이 있다. 그 당시 편의점은 너무나 신기한 곳이었다. 팝콘을 사서 곧바로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수도 있고, 일반 슈퍼에서는 팔지 않는 샤베트 류의 음료수를 팔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의 물건은 똑같이 슈퍼에서 파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슈퍼보다 가격이 비쌌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몇 번 가던 편의점은 곧 식상해졌고, 점점 편의점은 비싼 곳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편의점에 가는 횟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얼마 뒤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그 편의점은 곧 문을 닫고 말았다.

 요즘 집 밖을 나가보면 정말 편의점 천국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한 블럭 간격으로 골목 모퉁이에는 어김없이 편의점이 들어서있다. 그 종류도 패밀리 마트, GS25, seven eleven, ministop, by the way 등으로 다양하다. 편의점이 이렇게 많아지게 된 배경에는 편의점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다. 가격으로는 일반 슈퍼와 경쟁이 되지 않던 편의점들은 이름 그대로 편의성으로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편의점은 일반 슈퍼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들을 팔고,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나아가 택배 서비스, 공과금 납부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고, 현금인출기를 설치해 늦은 밤에도 현금을 찾기 수월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핸드폰 할인카드 제휴 등을 통해 슈퍼와 가격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슈퍼가 안일하게 가격경쟁력만 믿고 방심하고 있는 동안 편의점은 살아남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사는 곳 근처에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편의점 수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무리 편하다 해도 이렇게 많은 편의점들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과다한 공급에는 그에 상응하는 수요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빽빽히 들어서있는 편의점에 그만큼의 손님이 있다는 얘기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스턴트 식품은 그다지 즐겨먹지 않아서 편의점을 잘 이용하지는 않지만 가끔 정말 급하게 끼니를 해결해야할 때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곤 한다. 최근 모 블로그에 올라온 글에도 혼자 밥 먹기 좋은 곳으로 편의점을 뽑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혼자 밥 먹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모두들 끼니만큼은 누군가와 같이 먹으려 하고 어쩔 수 없이 혼자 먹어야만 할 때는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만나는 걸 꺼려한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 원룸이 즐비하게 들어선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방방마다 자신만의 둥지를 만들고 자신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들에게는 누군가와 만나 간단히 밥 한끼를 해결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 편의점은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비록 건강에 썩 좋지는 않지만 가볍게 끼니를 때우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누군가와 만날 걱정이 없는 편의점이야말로 이런 '코쿤족'의 성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아마 나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편의점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잘 이용하지 않는 것 뿐이다. 솔직히 나에게 '코쿤족'같은 생활은 더할 나위없이 편하고 포기할래야 포기할 수 없는 생활이 되어버렸지만 가끔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독신아파트가 늘어나고 그들을 겨냥한 상품이 나오고 있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혼자일 때 진정 편할 것일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