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이제서야 다 읽었다. 예전 같으면 1주일도 안 걸렸을 걸. 버스나 지하철에서만 읽게되니까 정말 오래 걸린 듯. 정말 이래저래 공감이 많이 가는 책이었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다. 후반부는 조금 지겨운 감이 없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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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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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삽입된 그림의 원화


제목이 달과 6펜스인 이유는 소설을 다 읽고 해설을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6펜스는 이 소설이 쓰여지던 시대에 제일 많이 통용되던 화폐였고(100원짜리라고 생가가면 됨) 달은 말 그대로 달이다. 둘 다 은색 빛깔이 나고 둥그렇게 생겼지만 6펜스는 물질적 가치를 상징하고 달은 이상적 가치를 상징한다. 즉 같은 모양이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세속적 가치를 모두 포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모든 열정을 다 바치는데 주인공이 포기한 가치와 선택한 가치를 달과 6펜스에 비유한 것이다.(사실 소설 안에서 달과 6펜스라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유명한 화가인 폴 고갱이 모델이다. 폴 고갱을 어느 정도 모델로 했으나 소설은 극적인 효과를 살리기 위해 허구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었다. 처음에는 이게 정말 폴 고갱의 삶인 줄 알고 애들한테 떠벌리고 다녔는데 알고보니 폴 고갱의 삶과는 꽤 거리가 있어 살짝 민망했다. 하지만 이렇게 허구적 요소로 인해 소설은 훨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40대에 갑자기 집을 나간 스트릭랜드. 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든 정열을 쏟아붙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소설 군데군데에 공감가는 구절이 참 많아 일일이 접어놓았는데 여기에다 살짝 옮겨보겠다.


#1. 스트릭랜드가 갑자기 집을 가출하자 스트릭랜드 부인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그의 가출 이유를 조사하러 온 나레이터가 스트릭랜드를 만나는 장면.

p.67
"아니 그럼 여자 때문에 부인을 떠난 게 아니란 말입니까?"
"당연히 아니오"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소."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 이 순간 나도 모르게 찡하는 느낌. 스트릭랜드의 단호한 한마디가 왜 이렇게 멋있을까.


#2. 모든 사람들이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던 때, 유일하게 그의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던 스트로브가 그의 아내에게 하는 말.

p.102
"당신 생각은 왜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는 건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3. 나레이커가 주인공에게 성적인 욕망을 억제하면서 사는 것이 실로 가능한 일이지 미심쩍어 하면서 물어보는 상황

p.113
"파리에 오신 뒤로 연애 같은 걸 해보신 적은 없나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시간이 어디 있소? 연애도 하고 예술도 할 만큼 인생이 길진 않소."
"겉보기에는 은자같아 보이진 않는데요."
"그런 따위는 생각만 해도 구역질 나오"
(중략)
"이런 말입니다. 몇 달 동안은 그런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런 일과 영영 인연을 끊었다고 스스로 믿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자유를 만끽하면서 마침내 내 영혼이 내 것이 되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하늘의 별들 사이를 걷는 기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그것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고, 그 동안 내내 진흙 구덩이에서 뒹굴고 싶은 욕망이 입니다. 그러다 어떤 여자를 만나는 거지요. 저속하고 천하고 상스럽고, 음탕스럽기가 소름낄칠 것 같은 그런 짐승 같은 여자를 말입니다. 그래서 마치 야수처럼 여자를 덮칩니다. 그러고는 욕정으로 눈이 멀 때까지 그것에 취하는 겁니다."

- 스트릭랜드와 나레이터 두 사람의 말 모두 참 공감된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욕망. 두 개 사이에서 수없이 갈등하는 영혼들. 스트릭랜드도 그 중 하나였지만 예술을 위해서 모든 걸 뿌리친 그의 정신은 정말로 강인하다.


#4. 스트릭랜드를 사모하던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의 자살 이후. 나레이터가 그 일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작가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피력한다.

p.156
나는 그녀가 남편을 진심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애무와 육체적 위안에 대한 여성적 반응, 대개의 여자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사랑이라는 것을 그 이상으로 치지는 않았다. 그 것은 포도 넝쿨이 아무 나무나 타고 자라듯, 어떤 대상을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는 수동적인 감정이다. 세상의 지혜는 그런 감정의 힘을 알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원하면 여자에게 그 남자와 결혼하라고 부추긴다. 사랑은 나중에 절로 생기게 마련이라고 장담하면서. 그것은 안전감에서 오는 만족, 재산에 대한 자랑스러움, 누군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즐거움, 가정을 가졌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 등이 어우러진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감정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여자들은 거기에 무슨 정신적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 이야.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정확히 정리할 수 있을까.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할 수는 없을거라고 본다. 여기에 어떤 부가적인 설명도 필요없다. 설명을 하면 사족이 될 뿐이다.


#5. 스트로브가 나레이터에게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본 소감을 전하는 장면에서 나레이터가 혼자서 속으로 생각하는 장면

p.191
사람들은 아룸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별것 아닌 것들을 기술하면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 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한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그저 아무거이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옷도 아름답고, 강아지도 아름답고, 설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아름다움 자체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돼먹지 않은 과장된 수사로 장식하려는 버릇이 있어 그 때문에 감수성이 무뎌지고 만다.

-어떤 단어의 남용은 그 단어가 지닌 진정한 의미를 잃게 한다. "좋다""아름답다""멋지다"라는 표현은 더 이상 어떤 느낌도 전달해주지 못 한다. 이런 말을 남발하는 것은 "난 내가 느낀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6. 나레이터가 스트릭랜드에게 블란치의 죽음에 대해 그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다그치는 장면.

p.202
"난 사랑 같은 건 원치 않아. 그럴 시간이 없소. 그건 약점이지. 나도 남잔까 때론 여자가 필요해요. 하지만 욕구가 해소되면 곧 딴 일이 많아. 난 그 욕망을 이겨내지는 못하지만 그걸 좋아하진 않아요. 그게 내 정신을 구속하니가 말야. 나는 언젠가 모든 욕정에서 벗어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내 일에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때가 있었으면 하오. 여자들이란 사랑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사랑을 터무니없이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야. 그래서 우리더러 그게 인생의 전부인 양 믿게 하고 싶어해요. 하지만 그건 하찮은 부분이야. 나도 관능은 알지. 그건 정상적이고 건강해요. 하지만 사랑은 병이야. 내게 여자들이란 쾌락을 충족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아. 나는 여자들이 인생의 내조자니, 동반자니, 반려자니 하는 식으로 우기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소."

-이건 사실 남성우월적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많다. 더군다나 사실 스트릭랜드는 나중에 죽기 전 3년동안 타히티 섬에서 원주민 여자와 결혼해서 살았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지는 발언.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해버릴 수도 없는 구절이다.


#7. 나레이터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촉망받는 한 의대 레지던트가 자신에게 보장된 모든 출세길을 마다하고 어느 섬에 눌러앉게 된다. 그 레지던트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정작 그 사람은 자신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는 않으면서 나레이터는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감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옛날 사람들도 오늘날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구나. 그 때도 오로지 출세하는 것만이 성공적인 인생이며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했구나. 정말 안타깝다. 왜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사람들은 모르고 사는걸까. 하긴.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걸수도 있지만.


정말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이렇게 많았던 건 호밀밭의 파수꾼 이후로 처음이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달려온 사람이나 인생의 선택기로에 놓여있는 사람이 읽으면 도움이 될 거 같다. 자신이 원하는 삶과 세상이 원하는 삶, 편하게 행복하게 사는 삶과 힘들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삶.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 물론 이 것이 일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가치관을 가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주변 사람들 의견에만 의존한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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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은 그의 말년을 태평양에 있는 타히티라는 섬에서 보냈다.


달과 6펜스는 이상하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소설이었다. 좀 더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이 소설이 폴 고갱의 삶과는 의외로 많이 다르다는 점이 좀 안타까웠다. 나도. 정말 스트릭랜드처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위해 모든 정열을 불사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