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해석

Posted 2007. 4. 6. 09:28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nid=533305
여기도 있고.

이건 또 다른 거..



공각 기동대에 대한 감상 - 사견과 단상들



공각기동대의 극장판이라면, 이것저것 TV 채널을 돌리며 접할 기회가 많았다. 다만, 이렇듯 공각기동대의 TV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하면서도 채 2 주도 지나기 전에 이 리뷰를 쓰게 될 정도로 정말 몰입해 본 애니메이션이다.


공각기동대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공각기동대’(엄밀히 말하여 ‘공각 기동대 보다는 공안 9과지만)라는 테러진압부대와 그들이 해결해 나가는 사회적 사건들이 다루어진다. 1기와 2기로 나누어져 있으며 1기는 ‘와라이 오또꼬’라는 사회적 현상이 주를 이루며, 이후 공각기동대 전반에서 핵심적인 개념인 ‘STAND ALONE COMPLEX'가 나타난다. 2기 GIG에서는 1기의 ’SAC'를 기본으로 하고, 좀 더 큰 스케일에서, 보다 현실과 사회에 가까운 ‘난민과 개별 11인’이 다루어진다.


공각 기동대의 화질은 독보적이다. 1기 OP에서 보여지는 3D 영상으로 압도당하기 시작한다. 이후 소령과 9과 대원들의 전투 액션은 헐리우드 영화를 방불케 한다. 배경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실사에 극히 근접한 극 사실주의를 보인다. 아마도, 앞으로도 왠만한 대작이 아니고서야 공각 기동대의 독보적인 위치를 위협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많은 팬들이 극찬을 하는 공각기동대의 OST 부분에도 훌륭한 평점을 줄만하다. 관능적인 러시아어의 독특한 어감이 있는 1기의 OP, 그리고 소령에게 바치는 한편의 시인 ‘LITHUM FLOWER . 1기의 락 음악과, 2기의 클래시컬, 합창까지. 그리고 공각기동대를 보았다면, 누구에게나 어떠한 감상으로든 다가올 타치코마의 합창까지.


1기 S.A.C는...


1기의 S.A.C는 ‘와라이 오또꼬 사건’을 둘러싼 스릴과 긴장, 그리고 치열한 두뇌 싸움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작품이다. 2중, 3중으로 겹쳐지는 미스테리는 두통을 호소하게 하지만, 그 결말은 기가 막히고, 통쾌하다. 5~7화 정도에서의 ‘경시총감 암살 미수 사건’에서 느낀 긴장감은 다시 맛보기 힘든 경험이었다. 또한, 공안 9과 존립의 위기로 몰리는 후반부에 팬의 감정이입은 극에 달한다. 1기에서 던져지는 화두는 이미 오래 전에 던져진 것이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거쳐서 도달하는 메시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인간의 존재의 본질과 생명에의 정의, 언어에 대한 질문들에 답해야 하는 것도 공각기동대를 보는 팬에게 주어진 하나의 과제이다.


2기 GIG는...


2기에서 다수의 팬은 실망을 느낄 가능성이 많다. 2기에서 공각기동대는 애니메이션라기 보다는 하나의 철학서, 다큐멘터리로 다가온다. 1기가 허구적 현실에 밑바탕을 둔다면, 2기 역시 그러하지만 일본의 근, 현대사와 보편적 사회현상들에 더 중심이 가 있기에 애니메이션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2기 전반에서 느껴지는 암울한 파시즘적 디스토피아가 구체적 실체를 들어내면서 왠지 모를 그림자를 가슴에 드리운다. 1기에서의 추상적, 철학적 메시지가 실제로 응용, 적용 되는데에서 2기의 참 맛은 한 층 더 깊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2기의 애니메이션 적 재미의 참패에 대해서는 말한 바 있다. 복잡한 메시지는 메트릭스의 절차를 밟으며 긴장과 스릴을 반감시키고, 지나친 요구에 독자의 인내심은 한계에 봉착한다. 다만, 초, 중반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고 후반부까지 참아나갈 수 있다면 그 동안 참아왔던 가극과 흥분을 한번에 터트리는 2기의 마지막 불꽃에 한번에 10여화를 몰아 보는 것도 금방이다.



캐릭터 - 매혹적인 그녀


소령(쿠사나기 모토코)


1기 엔딩곡인 ‘Lithum flower'는 그야말로 그녀에게 바치는 시이다. 그녀는 혼자서도 완벽하다. 공안 9과는 아라마키 과장 아래의 직렬적 구조가 아니라, 소령과 아라마키 소장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중력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고층 빌딩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그녀는 인간을 초극한 존재로 보인다. 메트릭스의 네오처럼. ‘암 슈트’라는 괴물에서부터, 바트와 같은 거구마저도 그녀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만다.


그녀에게 매력을 부여하는 것은 육체적 능력 이상으로 그녀가 내뿜는 오오라와 카리스마에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히 대응하는 신중한 성격, 급박한 때에 순발력, 공안 9과를 이끄는 그녀의 리더쉽. 그녀는 완벽하다.


대부분의 여성 주인공처럼 그녀에게도 ‘외유내강’의 2중 구조 속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모둔 여자 주인공이 결국에는 여성으로 돌아가 남성에게 종속된다면, 소령은 끝까지 두 가지 페르소나 (남성 - 여성, 아버지 - 어머니)를 잃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소령이 여느 만화 캐릭터와 다른 점이고, 그녀가 팬들에게 성적 대상에서 존경과 경외의 대상으로 사랑받는 이유이다.


파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과묵하고, 침착한 한 마리 이리와 같은 느낌의 사내이다. 개인적으로 파즈와 관련된 에피스드가 더 있기를 바랬다.


바트


토구사가 붙여준 ‘아저씨’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외관의 남자. 소령과 함께 다양한  전장을 경험한 전투의 베테랑이고 소령과 함께 9과의 돌격대장을 담당한다. 급하고, 다혈질적이지만 소령을 향한 숨길 수 없는 연심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요소이다.


아라마키 


정, 관계를 비롯하여 국제적으로도 손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연줄의 수완가. 노련하게 9과를 지휘해 나간다. 꽃을 연상시키는 머리는 ‘원피스’에서 라군이라는 고래와 함께 나오는 할아버지나 아톰의 박사님과 너무나 닮았다. 의외로 많은 여성을 울린 전력의 소유자.


사이토


일류 스나이퍼. 소령에게 패하여 감복하여 그의 수하가 된 2기의 에피소드가 매우 흥미롭다.


이시카와


그림을 그립시다에 ‘밥 로스’ 아저씨의 환생체. 9과의 오퍼레이터로, 9과의 임무를 지원한다. 소령과 오래 전부터 함께 해 왔다.


보머 


말 그대로 폭탄 전문가. 이시카와와 같이 오퍼레이터로 주로 활동한다.


토구사


멕가이버 닮은 9과의 신참. 전, 경찰 출신으로서 발로 뛰는 수사를 담당한다. 신참답게 정의감에 불탄다.


타치코마 


공각기동대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까지 불리울 정도로 비중있는 캐릭터이다. 공각기동대에서 팬들에게 던지는 질문과 답은 이 타치코마를 통해 대부분 전달된다.

1기에서 바트를 구하고 ‘타치코마 레인저’를 결성한 씬, 그리고 핵미사일을 막는 씬에서 어떠한 누구에게나 형태로든지 뚜렷한 감상을 남긴다. 파이널 판타지의 ‘쵸코보 레이스’나 카드캡터 사쿠라의 ‘케로짱에게 맡겨줘’와 같은 ‘타치코마의 하루’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공각기동대'에서의 세계관 - 국내외 정세



국외 정세


공각기동대의 배경인 2030년대 이전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다. 3차 핵대전, 4차 비핵대전이 그것이다. 그 전쟁의 잔혹함과 치열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공각 기동대에서 스쳐가듯 비치는 세계지도는 넝마주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이다. 유럽동부의 대부분, 특히 중국의 경우 강남, 사천 지방 전역이 둥근 원역을 그리며 바다에 포락되어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일본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 관동지방이 수십년 간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피폭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도대체 어떤 전쟁이었기에 대륙과 수억명 인명을 집어삼켰을까...


미국의 경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주역이었지만, 전후, 경제가 기울고 국토가 분열된 것으로 나온다. 미국에 대한 간접적인 복수일까? 나중에는 지금의 일본과 미국의 위치가 뒤바뀌어 가는 정세도 살펴 볼 수 있다. 마지막에 가서 미국이 일본의 자금에 움직여 핵 미사일을 발사하는데에는 결국 어린애 같은 심보를 일본인도 버리지 못하는 구나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은 통일되었다. 다만, 그 과정이 순조롭지 못하고, 북한 군부의 반발로 전쟁이 그치지 못한 차림새. 이 과정에 자위대와 미국이 개입하여, 결국 통일이 완성된 듯 하다. 예상한 것과 달리 국체가 사라졌다던가, 민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지 않은 것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마도 일본과 미국 한 수 아래의 국가로 그들의 영향아래 머물러 있는 한국이라는 설정에는 기뻐해야할지 분노해야할는지.


암울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모든 나라가 피폐해졌으며, 이제는 어느 정도 상흔이 아문 어가는 2030년.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에서 벗어나 이제는 미국을 대신한 세계의 경찰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 정세


일본은 전쟁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고, 세계 최강국의 지위에 다가서고 있다. 다만, 관동지방이 침몰할 정도의 강력한 타격에서 일어나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거다. 비록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라지만, 전세계적 불황의 여파를 받고 있고, 난민이라는 전쟁의 이를 포용하지 못함은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현재의 우익 연합이 여전히 정치적 우세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고 현 고이즈미 정권과 유사한 우익, 보수 성향이 뚜렷한 일본이다.

전쟁의 상흔이 아물어 가고 있다지만, ‘유사헌법’이라는 초월권 법률이 시행되고 있을 만큼 사회 전체는 전쟁상태 그대로 경색되어 있다. 일본의 사회는 태평양 전쟁 전의 일본과 매우 흡사하다. ‘공안 9과’ 를 비롯한 정보, 특수군사조직이 난립해 있고, 이들은 권력에 따라 움직이며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다. 사이보그 화, 정보화는 역설적으로 바늘만큼의 프라이버시도 없애버렸다. 개인의 죽음은 위장되고, 쾌락을 억제당하고 언론과 상업주의에 의해 호도되는 사회는 ‘STAND ALONE COMPLEX’의 싹을 내포하고 있다.




공각기동대를 둘러싼 논란 -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


공각기동대를 향한 악평의 면면을 살펴보면, 작품의 질을 문제 삼기보다는 공각기동대에서 풍기는 과거에 죽은 망령의 냄새를 문제 삼는 것이 많다. 과연 공각기동대는 위험한 향수를 잊지 못한 시대착오적 산물인가?


결론부터 내리자면,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로 흐르는 지금에 경종을 울리고, 과거가 남긴 상처를 돌아보라고 경고하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공각기동대의 파시즘적 세계관과 전쟁 후의 암울함은 독자에게 흥분과 긍지 보다는 지울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을 준다.


공리주의적 사고 아래에 ‘고다’를 위시한 세력이 난민을 탄압하고, 재무장을 노리는 것은 히틀러와 너무도 닮은 꼴이다. 난민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그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격을 두는데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타치코마의 ‘희생’과 결부지어, 우익집단의 음모는 너무나 추악해보인다.


와라이 오또꼬 사건의 정경유착과 비리는 과거 재벌과 군대의 유착으로 이어진 태평양 전쟁과 현대 일본의 부정에 대한 고발이다. 더러운 연쇄는 근래에 터진 각종 비리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시궁창 속 권력의 속성을 팬들은 내부에서 보는 것과 같이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야마토’ 일본 민족주의의 부르짖음을 픽션과 설정상의 필요만으로 넘길 수는 없다. 분명, 김진명씨의 소설처럼 우리 문화 전반에서도 민족주의 코드는 빠질 수 없는 흥미의 요소라는 점에서 면죄부를 줄만하지만,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STAND ALONE  COMPLEX 


공각기동대의 또 다른 부제인 STAND ALONE COMPLEX. 그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 직접적인 뜻을 친절히 설명하는 부분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그것을 정의 내리자면 ‘사회가 내포한 구조적 모순점으로 전혀 연관이 없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하나의 사상, 목표를 향하는 병렬적 집단 현상’ 정도로 정의 내릴 수 있을 듯 하다.


이 현상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자발적’을 유도하는 ‘필연’이다. 무엇이 이와 같은 현상을 발생시켰을까? 더 이상 사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존엄을 찾을 수 없는 시대 ? 개인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전체주의의 광풍?  언론과 상업주의의 극대화된 억압?


고다와 타치코마가 제시하는 답은 개성과 자아의 상실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대한 개인의 마지막 저항이다.

전뇌화에 따른 피할 수 없는 넷의 그물망에 개인의 사고는 의미를 잃어가고, 하나의 병렬된 사고가 강요된다. 인간의 기계화, 환원, 분량화에 따라 육체에부터 심지어는 영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본질은 파헤쳐져 가고 그것이 상실되어 간다.


존재와 본질의 사멸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대한 개인의 저항. 아마도 그것이 S.A.C 가 아닐까 한다. 다만, 역설적으로 사회와 문명이 강요했던 넷은 사회의 억압과 요구와 함께 사회의 역설과 모순마저 들어내 보임으로써, 개인의 ‘자발성’과 ‘병렬화’를 촉진시켰다


존재의 본질을 잃어가는 것이 어떠한 의미이고, 어떤 생각으로 다가올지 지금의 나에게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S.A.C 에 동감하기도 쉽지 않다. 나아가서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반발하고 싶을 정도이다. 다만, 댓글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파워를 실감해 나가며 ‘개별 11인’과 ‘실베스트로’의 사상이 허구라고만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한 줌 불안을 남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일찍이 플라톤으로부터 장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들이 감각의 주관성을 비판했고 근대에 데카르트와 칸트는 이성의 허구마저 깨뜨렸다. 이제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현대 포스트 모던, 매트릭스의 세계가 도래했다.


사이보그화는 생명과 인간의 정의를 모호하게 한다. 이제 ‘뇌각’만 있다면, 어떠한 신체의 손상도 자연의 신체 보다 더 뛰어난 ‘의체’로 교환할 수 있다. 영혼의 그릇인 뇌는 ‘전뇌’라 불리며 디지털 용기에 포위되었다.

로봇들의 생김새는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이 흡사하며, 심지어 타치코마는 인간만이 가졌다는 창조적 이성과 감정마저 가진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성의 사유와 기억마저도 이제는 조작이 가능하다. 마침내는 영원히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고 해야할 영혼마져도 ‘GHOST’라 이름 부쳐져 분량화 된다.


이제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장벽은 모두 허물어졌다. 무엇이 인간이고 로봇인가? 신체가 절단되도 다시 교체할 수 있는, 인공의 육체 속에 ‘GHOST’를 지닌 바트나 소령이?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희생하는 타치코마가?


신체와 영혼은 불가분의 관계인가?


타치코마는 기계적 무기체이다. 하지만, 지극히 합리적이여야 할 육체와 달리 그들이 보유한 GHOST는 바트를 위해, 9과의 동료들을 위해 희생하라는 비합리적인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다면 존재는 영혼과 신체라는 이원적인 구조위에 서 있는가? 공각기동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이제 인간은 마음에 드는 얼굴을 스스로에게 입힌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는 것도 옛말로 보인다. 하지만, 쿠제의 얼굴에서 난민들은 거대한 사상을 담은 영혼을 보았고, 그렇기에 쿠제를 따른다. 파즈의 옛 애인은 스스로에게 파즈의 얼굴을 입히고 나서야 파즈가 얼마나 자신에게 뜨거운 감정을 가졌는지 깨닫는다.


비록 인공적인 의체라 하더라도 그것은 속에 든 영혼과 함께 존재를 규명한다. 인간은 신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성립한다.



GHOST는 기억의 단편인가?


인간의 GHOST란 인식과 기억들의 합산이다. 모든 것이 분량화되어, 극도의 발전을 이룬 과학의 자신만만한 선언은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과학은 의체를 만들 수는 있었어도 기억과 인식의 단편으로 GHOST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소령이 발한 ‘과학의 명령’을 GHOST를 성찰하던 타치코마들은 거부한다.


맹자가 발견한 사덕의 씨앗과 칸트과 본 도덕의 신비로움은 분명 단편 이전의 무언가 본질적인 요소가 있음을 가리킨다. 인간의  도덕과 윤리? 창조성 혹은 예술적 감각?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분량화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영혼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다.


공각 기동대에서 던지는 몇 가지 질문으로 인간을 정의 내리려 해 보았지만, 결국에는 더욱 더 많은 질문만이 나타날 뿐이었다. 과연 육체와 기억을 상실하고도 인간이 종국내에 가질 가장 본질적인, 인간이라고 할만한 것은 무엇일까?




마치며...


공각 기동대는 여느 애니메이션과 달리 감상만으로 그칠 수 없었고, 난삽한 생각을 정리해보기 위해 쓴 글을 조잡하나마 오픈사전에 등재해본다. 난삽하고 산만하기 짝이 없지만, 공각 기동대를 감상하는데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각 기동대는 외현적 요소 그 자체만으로도 누구에게나 긴장과 스릴, 완성된 애니메이션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내포한 메시지들은 성찰의 틀을 넓혀 줄 것이고, 다양한 각도에서 공각기동대를 바라보며 질리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가깝던 멀던 언젠가는 꼭 공각기동대를 접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