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

Posted 2008. 7. 3. 17:18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거다. 아니 1학년에서 3학년 사이인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하여간. 그 때 우리집에서 학교까지는 10분거리였는데. 가끔은 학교 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기도 했다.

겨우 한 정거장밖에 안 됐지만.

그리고 그 버스 정거장 앞에서는 여느 학교나 다 그렇듯.

초등학생들의 푼돈으로 장사를 하는 가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뽑기는 아이들에게 정말 인기만점이었다.

뽑기는 대부분 기껏해야 100원~200원가량 했는데 정말 럭셔리한 500원짜리 뽑기 기계가 하나 있었다.

500원짜리답게 거기 있는 상품은 대부분 멋지고 판타스틱했지만 간혹가다 100원짜리보다 못 한게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 기계에 500원을 넣고 뽑는 것을 마치 심판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범죄자마냥 긴장하며

손잡이를 돌리곤 했다.


그리고 난 항상 그 옆에서 뽑기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손에 꽉 쥔채로.

그 당시 500원은 쉽게 얻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1000원짜리 한장만해도 거금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500원을 쓴다는 것은 앞으로 내가 가질 수 있는 많은 것을 포기하는 행위였다.

전문용어로는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

그래서 난 항상 뽑기 앞에서 다른 아이들이 뽑기 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30분이 넘게 서있곤 했다.

그리고 결국은 뽑기에 동전을 넣었다가 다시 빼내고는 집에 가버렸다.


어쩌면 그 일은 앞으로의 내 인생을 결정지어줄 중요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내 인생의 복선이 되는 한 장면이었을 거다.

난 아직도 500원짜리 동전을 손에 꽉 쥐고는 다른데에 쉽사리 쓰지 못 하고 있다.

남들이 500원짜리 동전으로 뽑기를 해서 기대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얻기도 하고, 100원짜리도 안 되는 게 나온 걸

보면서 후회하는 모습을 구경만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난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위하고 있다.

하지만 동전을 쓰지 않으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멋있는 장난감이나 설사 쓰레기보다 못한 장난감이라도 난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결국 뽑기기계는 텅텅 빌 것이고.

난 또다시 다른 기계 앞에서 시간을 보낼 거다.

다른 아이들이 뽑기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